하워드 제어 교수님 강의 내용

2018년 1월 16일 화요일 오전_EMU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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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제어 (Howard Zehr) 박사

*이 내용은 해외연수 기간 방문한 Eeastern Mennonite Unviersity의 하워드 제어 박사의 강의를 약식 정리한 것임.

일단 회복적 정의가 초기에 어떻게 실천영역에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그런 운동에 대해서 어떻게 지원하게 되었는지 배경에 대해서 말해보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주로 교육영역에 계신데, 사실 회복적 정의가 교육영역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고, 원래는 사법 영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 운동이 확산되면서 교육영역에 회복적 정의가 더 중요하게 접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회복적 정의에는 여러 가지 신앙적 배경이나 그 뿌리가 되는 영향을 준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회복적 정의 운동은 어떤 작은 사건에 의해서 발단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1974년에 온타리오 작은 마을에서 소수의 기독교인들이 자기들이 믿고 있는 신앙을 어떻게 사회에 적용할까 고민하던 그룹이 있었는데, 마크 얀Wm(Mark Yantzi)라는 메노나이트 보호관찰관이 그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보호관찰관으로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만나서 상담하는 일과 그에 대한 보고서를 담당판사에게 제출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엘마이라의 그 사건, 22집에 피해를 준 그 사건, 이런 일들이 그 당시에 벌어졌을 때, 그 때 그 분들 생각이 이 사건을 일반 사건과 똑같이 처리해서 얘들이 처벌받고 나면, 이 친구들이 피해자들한테 진짜 어떤 피해를 줬는지도 모를뿐더러 피해자들은 굉장히 분노한 상태에서 조용한 동네가 엉망이 되었는데, 그 상태로 끝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MCC)라는 기관에서 일하고 있었던 데이빗 워스(David Worth)라는 분은 그 이야기를 듣고 같이 의논하기를 그 애들이 그냥 처벌만 받지 말고 피해자들에게 어떤 피해가 발생했는지를 들어야 되지 않겠냐 라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마크 얀찌는 보호관찰관으로서 그가 직접 그런 제안을 하기에는 어려우니까 데이빗 워쓰와 함께 그 제안서를 써서 그가 그것을 제출하겠다는 의견을 이야기합니다.

회복적 정의 운동은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결국 이 두 소년들이 그 피해자의 집들을 다니면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필요를 듣고 그 필요를 채워주는 방식으로 책임을 지는 일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이 아이들을 데리고 갈 때 그 당시에는 아직 어떤 프로그램 자체가 없었으니까 어떻게 했냐면, 그 피해자의 집에 가서 배경설명을 한 뒤에 나오고 그 가해청소년들을 피해자들에게 보내고, 그 두 사람이 뒤에 있겠다고 해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식으로 그렇게 바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서 전체적으로 회복적 정의 운동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1978년에는 미국 인디애나주 엘카르트에서 또 다른 메노나이트 보호관찰관이 그와 비슷한 생각을 우연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도 이런 비슷한 방식의 시도를 하긴 했는데 미국 쪽에서는 처음에 잘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그 당시에 그 보호관찰관들이 인디애나주에서 이런 방향의 접근을 시도하다가 잘 안되자, 그들은 나(하워드 제어)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 당시에 원래 하고 있었던 일은, 감옥에서 이제 막 나온 사람들이 사회에 나오기 전에 중간에 지내는 집이 있었습니다. 그 시설을 책임 맡고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집이 불타는 바람에 새로운 일을 찾고 있는 상황에서 그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맨 처음 시도한 것은 형사사건 중에 선별해서 그 사건들을 이 지역사회와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을 조금씩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세계 여러 나라 여러 사람들이 와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배우고 싶으니 알려달라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나 스스로도 정확하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정리하고 있는 상태에서 사람들이 그 내용을 알려달라고 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내가 중요하게 발견한 것들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맨 처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이 실천영역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무슨 중요한 이론을 가지고 시작한 운동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인으로서 이런 일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신학적 및 신앙적 배경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시작하면서 우리 형사시스템 안에 세 가지 중요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 우선 사법시스템 안에서는 가해자들이 스스로 다시 트라우마를 겪게 만드는 절차가 처벌절차인데, 그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범죄자들이 다시 트라우마를 겪게 하는 것보다 치유가 되는 방향으로 이것을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둘째, 가해자들이 처벌을 받는 것은 맞는데, 실제로 의미 있는 방식의 책임을 진다는 것은 없었습니다. 처벌을 주는 것은 물론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자기들의 책임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를 알려줘야 하는데 그 부분이 많이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이런 모든 것들을 소위 말해서 전문가, 사법전문가들에게 맡기고 나니까 지역사회나 공동체는 점점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지거나 멀어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어떤 판사분이 초기에 어떤 말을 했냐면, 서양에서 왜 공동체 의식이 약하냐 하면, 공동체 안에서 발생되는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공동체성이 강화되는데, 이것을 일종의 사법시스템이나 전문가에 맡기고 나니까 공동체성이 강화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사라져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릴 크리스티라는 사법을 연구하는 분이 말씀하시기를, 범죄라는 것은 우리의 재산을 빼앗아가는 것인데 이것을 국가가 관리하겠다는 식으로 가져가버리니까, 어찌 보면 범죄라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사회공동체의 자산이 될 수 있는 것인데, 이것을 다 정부가 독점해버린 것이 되었습니다.

지금 얘기한 이런 것들이 처음에는 이론이 없었지만, 현장에서 이런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보고 있었고, 이런 문제의식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이런 운동 혹은 활동의 시작에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평화를 만들어가는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그 일중에 하나로 이 일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나뱁티스트나 메노나이트의 전통을 이해하신다면, 왜 이 사람들이 이런 쪽의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 이해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메노나이트나 아나뱁티스트의 신앙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어떻게 믿을 것이냐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을 어떻게 따를 것이냐의 실천 영역이 더 중요하다고 이해한 사람들입니다.

처음에 이 일을 하던 사람들이 “이 문제가 있구나”라고만 바라본 것이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고쳐나갈 것이냐?”하고 뛰어들었던 것이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이 초기 그룹들이 고민했던 것은 평소에도 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비폭력적으로 접근할 것인가 하는 것이 늘 고민이었고, 그런 사회문제에 대한 비폭력적 접근이 회복적 정의 운동의 탄생에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또 하나 이 그룹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중에는 공동체와 관계성입니다. 그래서 이 분들이 왜 화해의 사역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초기 프로그램 이름은 피해자 가해자 화해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런데 맨 처음 이 “피해자 가해자 화해 프로그램”으로 명명했던 것에 대해서, 이 화해의 의미를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들도 오해하는 일들이 많이 생기면서 “화해”라는 단어가 빠지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조정”이라는 용어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우선 “화해”의 의미를 좀 더 설명해보자면, 개인 간 관계상의 화해가 있다. 물론 개인 간의 화해라는 것이 서로 포옹하고 눈에 보이듯이 바뀌지 않고, 완전히 서로 원수 된 사람들이 조금씩 바뀌는 정도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 대중들은 그런 것보다도 어떤 두려움이 있냐면 우리가 화해라는 용어를 쓰다보니까 내가 강제적으로 그런 화해의 과정에 들어가야 되지 않을까 하는 거부감, 불편함 이런 것들이 작동하면서 오해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또 메노나이트 쪽에서는 화해와 용서라는 교육을 받다 보니까 정의, 즉 옳게 바로 잡는다는 면에서는 약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초기에 이런 일을 하면서는, “피해자의 필요를 채우는 것, 그리고 가해자에게 책임성을 가르치는 것, 그리고 사회와 공동체를 치유하는 쪽으로 우리가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봤습니다. 이게 다 서로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진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화해는 개인들의 선택일 수는 있지만 그것을 우리가 책임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측면의 아나뱁티스트들의 특징, 특성을 말하고 싶습니다. 아나뱁티스트들은 전통적으로 정부의 기능을 굉장히 회의적으로 봅니다.

우선 큰 사회 안에서 이 그룹은 항상 소수 그룹이었습니다. 비록 소수지만 늘 하려고 했던 사회나 정부에서의 역할이 뭐였냐면, 증인으로서의 역할, 양심적 행동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정부의 정책을 바꾼다거나 그런 목표보다는 지역사회나 풀뿌리운동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래서 보호관찰관들과 얘기를 할 때, 이게 문제이고 이렇게 앞으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초기 이 운동이 시작되고 진행되고 확산되는데 있어서 아나뱁티스트 혹은 메노나이트 교회들 말고도 일반 교회들도 이 운동이 확산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교회들이 이 운동에서의 역할은 굉장히 작아졌습니다.

그러나 초기에서는 교회들이 이 운동을 꾸준히 진행시키고 확산시켰습니다. 내 생각에는, 이 운동이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어도 여전히 교회들이 소수일지라도 이 운동을 확산하는데 계속적으로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교회 그룹들만이 이 운동이 갖고 있는 근본적 고민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들은 비록 소수이지만 사회가 할 수 없는, 위험을 자초하는 그런 것들을 교회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드렸듯이 초기에는 어떤 그런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이론적 배경이 없었던 상황에서 실천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다가 80년대에 들어가면서 사람들에게 이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게 되면서 내가 역사를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글도 보고 종합해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도 썼지만 이 운동은 어떤 환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초기에 이런 것을 배우는 사람 중에 누가 있었냐면 카톨릭의 신부와 수녀들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이 재소자들을 위해서 봉사를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들과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본인이 용어를 뭐로 표현해야 할지 고민했었는데, 정의에 대한 것을 잘 이해시킬 수 있는 의사소통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어떤 단어를 쓸까 고민하다가 나온 말이, 회복적 정의라는 표현이었습나다.

영어로 “응보적 정의”라는 말이 “Retributive Justice”이고 그 말 때문에 비슷한 말 속에서 비교되기가 쉽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감 때문에 “Restorative Justice”라는 말이 생겨난 것입니다. 물론 지금 여러분도 아시는 것처럼 “회복적 정의”라고 표현된 “회복적”이라는 용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잘 아우르고 있거나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한계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운동이 어떻게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는지 그 부분도 말씀드리겠습니다. 70년대와 80년대에 북미에 여러 가지 운동들이 회복적 정의 운동이 진행되는데 어찌 보면 도화선, 배경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시민권 운동”이 굉장히 컸던 시기입니다.

그러다보니까 인종 문제를 사법 시스템에서도 굉장히 또 차별적으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구조적 폭력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것에 대한 저항 운동이 사회적으로 커져 있었습니다. 사실 감옥에 보면 그 사람들이 꼭 감옥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냐 아니면 감옥을 대체할 시설에 가도 괜찮을 사람들이냐 그것을 비율로 보면, 그 때보다 지금 더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갑니다. 그래서 지금 뭔가 좋아졌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아무튼 현실은 꼭 가야될 사람들이 얼마나 되느냐는 그런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운동이 퍼지게 된 배경에는 바로 여기 정의 사법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모순, 약자들에게 오히려 더 강력한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순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회적 배경은, 피해자에 대한 권위를 보호하자는 운동이 당시에 많이 퍼져 있었습니다. 그것도 또한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분야는 조정자들에 의해서 문제가 풀려지는 이 조정(mediation)이 사회 안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는 시점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이게 좀 더 발전하기 시작할 때에 나는 MCC의 사법/정의 분과의 책임자로서 미국을 대표하였고, 아까 초기에 데이브 워쓰는 캐나다의 책임자였다. 이 두 사람이 이것을 어떻게 사회 안에서 전략적으로 잘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둘이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쪽 영역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것을 자료나 책으로 나온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정리해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먼저 작은 소책자를 내게 되었습니다. 맨 처음 썼던 것은 일종의 메뉴얼 같은 것이었다. 어떻게 진행하면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필요한 것은 이것을 하는 이유나 이것은 도대체 어떤 뼈대(framework)를 가지고 있는 것이냐에 대한 것이었다. 이론서가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중요한 영역이 이런 것을 이해하고 관심 받는 분야가 넓어지다 보니까 이 사람들하고 같이 여러 형태로 이 주제에 대해서 대화를 어떻게 계속 이끌어갈 것인가가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노르웨이의 유명한 신학자를 불러와서 실천가들, 신학자들, 이론가들 이런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이것에 대해서 토론하는 그런 시간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때 그렇게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이 주제에 대해서 토론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도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경찰에서 회복적 접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불러서 모임에서 같이 토론하고 의논하는 그런 것들이 여전히 이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정부차원의 정책을 어떻게 할 것이냐 보다는 지역사회나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확산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들을 많이 하는 것이 이 운동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때 이런 일을 확산할 때는 MCC가 거의 백지수표를 주면서 어디든지 필요한 커뮤니티에 가서 이런 것을 해보라고 해서 내가 관심이 있고 하면 어디든지 그 예산을 가지고 도와주고 설명해주는 식으로 운동 확산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캐나다의 책임자인 데이브 워쓰와 만약에 내가 필요해서 책을 쓴다고 하면 출판해주겠다는 식으로 적극적인 지원이 기관에서부터 나오고 있었습니다.

영어로 말하면 propose not impose 즉 초청 베이스로 일을 해왔습니다. 이게 이런 거니까 하라는 식이 아니라, 이런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한번 와서 같이 참여해보고 의논해보면 어떻겠는가 라는 초청하는 방식으로 일을 해왔습니다. 이렇게 초청하는 방식으로 일이 진행된 것도 초기의 전략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회복적 정의 운동을 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초청하고 그 사람들이 정의의 필요가 뭔지 또 어떻게 해야 정의를 느낄 수 있는지를 계속적으로 소통하게 하고 생각하게 해서 그것이 쌓여가도록 돕는 그런 방식을 써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니까 지금은 사법 영역, 학교 영역 그리고 다른 많은 영역에서도 회복적 정의 운동이 확산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피해자 가해자 대화 모임이 중심이었는데 지금은 훨씬 더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내 생각에는 이렇게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지금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이 운동이 갖고 있는 뿌리인 이 운동이 어떤 뼈대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뼈대와 가치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냐면 잘못하면 쿠키커터(쿠키를 찍어내는 틀)가 작동이 잘된다고 알려줘서 그것을 그대로 찍어내는 식의 확산은 나중이 되면 이 운동이 무슨 필요가 있고, 누가 영향을 받았고 하는 이런 중요한 질문들을 놓치게 되고 그냥 흘러가버릴 확률이 많아진다. 중요한 것은 질문의 틀과 뿌리를 바꾸자는 것입니다.

학교나 사법에서 늘 물어보던 질문이 도대체 “어떤 법을 어겼느냐? 어떤 잘못을 했냐? 어떻게 처벌할 것이냐?”의 질문의 틀이 계속 있다는 것입니다. 회복적 정의의 핵심은 이 질문의 틀을 바꾸자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피해를 입었고, 어떤 피해를 입었고, 어떻게 책임을 져서 채울 수 있느냐 그리고 누가 책임이 있을까 그리고 어떤 책임을 져야 이게 회복될 수 있을까 이런 것들로 질문의 틀을 바꾸자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제일 큰 핵심은 이렇게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는, 다양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이런 현상들을 어떤 하나의 모델이나 하나의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나중에 굉장히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이 가치와 뼈대가 왜 중요한지에 대한 두 번째 이유는, 어떤 종류의 사회변혁운동도 나중이 되면 잘못 이용되거나 또 심지어는 왜곡되어서 진행되는 확률이 많아집니다. 미국만 보더라도 사법개혁운동, 사법개혁의 여러 정책들이 처음에는 신선하고 좋은 방향으로 시작이 되었지만 대부분은 다 변형되거나 왜곡된 형태로 끝나버렸습니다.

일종의 그런 잘못된 변형을 막기 위해서는 이 운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주 깊이 이 철학과 뼈대를 이해하고 있어야 이게 원래의 방향을 그나마 잡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나는 인생 하반기에 집중하고 싶은 작업은, 이 뼈대와 가치를 잘 이해시키는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기독교적인 배경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는바와 같이 신약성서에는 용서와 화해에 대한 것이 있기 때문에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부분은 본인 책에도 썼지만 나(하워드 제어)는 오히려 신약성서에서 그 근거를 찾지 않고 오히려 구약성서에서 그 근거를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신약이 가지고 있는 좋은 이미지보다 구약이 가지고 있는 어찌 보면 복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런 것들에 대한 개념이 훨씬 강해서 구약은 좀더 응보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표현도 구약에는 딱 세 번만 나온다. 380번은 오히려 “샬롬”이라는 말이 더 많이 나옵니다. 올바른 관계 설정, 올바른 삶, 이런 것을 뜻하는 “샬롬”이 훨씬 더 많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구약이 말하는 핵심은, 하나님과 우리, 창조주와 피조물들이 서로 간에 바른 관계 설정과 바른 삶의 형태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을 보면 핵심은 우리가 얼마나 엉망인 삶을 살든, 인류가 얼마나 엉망이 되든, 하나님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약을 이해할 때 바른 관계 설정과 바른 삶의 방향에 대한 것이 구약의 메시지라면 신약을 이해하는 것은 아주 쉬워집니다.

다른 종교를 가진 분들은 이 비슷한 메시지를 자기들의 종교, 자기의 신앙 가치 안에서 발견할 것입니다. 나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그것을 기독교의 틀 안에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샬롬 트라이앵글(shallom triangle)이라고 부릅니다.

서로 간의 샬롬의 관계 설정, 신이 만들어 놓은 피조물들과의 관계, 신과 창조주와의 관계, 이 세 가지를 샬롬 트라이앵글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우리말로 번역하면 “변상”이라는 말인 “restitution”도 가만히 보면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샬롬”이 의미하는 바도 우리가 얘기하는 “변상”이라는 말에 적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 질문과 답변 >

1. 질문 : “회복적 정의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어떤 것이 회복적 정의의 완성이라고 보십니까? 회복적 정의의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 답변 : 내가 이해하는 회복적 정의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가 어떻게 올바른 관계를 서로 설정할 것이냐? 그 세상으로 갈 수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운동을 하다가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회복적 정의는 삶의 방식이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사법을 어떻게 바른 형태로 개혁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했는데, 왜 사람들이 이것을 삶의 방식이라고 이야기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결국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피해를 주는 일들이 생기면 그것은 관계가 바로 섰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 때문에 사법영역이나 범죄영역이 아니라 개인과 여러 사람 간의 관계 설정의 방향이 바로 잡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성 수용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감옥에 간 적이 있습니다. 여성 재소자들이 모여서 회복적 정의를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서로 앞으로 서로 관계설정을 바르게 해야되느냐를 고민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단지 어떤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다시 바르게 회복시킬 것이냐의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공부하고나서 자기들끼리 잘못 행동한 사람에게 뭐라고 하냐면 “저 사람은 회복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 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 여기에서 배경은 무슬림이지만 공부를 하고 자기 커뮤니티에 돌아가서 거기에서 이런 회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문화는 다르지만 이것은 같은 가치로써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내가 생각할 때, 이것은 삶의 방식으로서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2. 질문 : “이 운동의 확산에 정부의 지원은 어떠했는가요?”

* 답변 : 사실 미국 정부가 이쪽 영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사법시스템은 매우 처벌 중심적이다. 응보적 체계를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받아들였다고 해도 얼마나 받아들였는지는 살펴봐야 합니다.

오히려 다른 나라들이 하고 있는 실천이나 이해가 미국 정부나 정치권보다 훨씬 더 회복적이라고 봅니다. 캐나다, 영국, 독일, 뉴질랜드 같은 나라들이 회복적 접근을 더 빨리 받아들였습니다. 심지어 80년대부터 독일과 영국에서는 정부대표단이 와서 여기에서 하고 있는 일을 배우고 갔습니다.

사실 미국에서도 여러 주에서 와서 배우고 정책에 반영했다고 들었는데, 막상 가서 보면 실제로는 회복적 접근의 가치를 잘 가지고 있지 않거나 오히려 왜곡된 프로그램이나 접근이 많습니다. 지금은 콜로라도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주가 어떤 형태로든지 회복적 정책이나 접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잘되고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졌기 때문에 최소한의 요소들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미네소타 같은 경우가 좀 높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클 프로세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케이 프라니스라는 사람이 거기 출신입니다. 미네소타의 수감시설, 교정정책의 고위층에서 회복적 정의 접근을 열심히 받아들여서 정책으로도 냈던 예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분이 미네소타에서 했던 방식이 조금 나았다고 보는 것은 여러 곳에 가서 본인들의 정의필요가 뭐냐 등 아까 이야기했던 초청 모드에서의 대화 이것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회복적 정의라는 것이 무엇이고 이런 모습이고 이래야 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이런 것들이 잘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나마 괜찮은 정책으로 갔다고 봅니다.

뉴질랜드의 FGC도 매우 좋은 예입니다. 사실 뉴질랜드도 회복적 정의를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나서 프로그램이 나온 것이 아니고, 오히려 마오리족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전통 속에서 가만히 관찰해보니까 회복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이 나름 잘 진행되었습니다.

3. 질문 : “회복적 접근을 통한 사례 부탁합니다.”

* 답변 : 처음에 본인도 이 운동이 시작될 때,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습니다. 사실 초기에 가해자들의 변화나 이런 것에 대해서 회의적이었습니다. 정책 등에 대해서도 그랬습니다. 사실 70년대에 잡지에 글도 기고하면서 우리의 사법시스템이 얼마나 응보적인지를 역설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 분야에 들어오는 그 시점에 본인은 이런 변화가 가능할까 하는 회의적 시각이 있었는데 몇 가지의 사례 때문에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가지 사례가 있는데 젊은이 두명이 그 동네의 높은 지위의 공무원 집에 도둑질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회복적 접근이 시도가 되니까 이 가해소년들을 데리고 가서 그 피해를 입은 그 부부를 만나는 대화모임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그 대화의 결과로 어떤 요구가 나왔냐면 그 피해자들이 자기들에게 필요한 가구를 사오도록 했습니다. 그것으로 그들이 입은 피해를 대신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런 요구를 왜 했는지 그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하나는, “가해소년들이 어떤 가구를 사오는지?”, “어떤 소년들일까?”, “무슨 생각을 하는 애들일까?”가 궁금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다른 사람들이 그 피해자의 집에 와서, “이 가구는 뭐냐?”고 물어보면, “우리 집 도둑질 한 애들이 사온 거야.”라고 얘기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해소년들이 나중에 어떤 가구를 사양되나 고민이 되다보니까 결국은 피해자부부와 도둑질 한 애들이 같이 가서 가구를 사게 되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나서 몇 달 후에 피해자였던 분이 길을 가다가 도둑질했던 그 젊은이를 만나게 되었다. “어디가고 있냐?”라고 물어보니까, “직업을 잃어서 저기 있는 공장에 일하게 해달라고 할려고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 내가 사장을 잘 아니까 소개해주겠다.”고 해서 그 공장에 취업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례들이 어떻게 보면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작용이 일어나서 변화를 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또 다른 사례 하나는 미국전역에도 알려지고 세계적으로 알려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시간 분량의 정리된 다큐멘타리가 있습니다. 인디애나의 베트남 참전용사였던 사람이 열네 집을 도둑질을 했는데 그 열네 집 중에 한 집이 그 지역 검사의 집이었다.

나중에 이 사람이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그 사람들이 친구가 되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이 사람은 중형을 받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굉장히 이 사람이 잘하고 있으니까 안 집어넣을 수는 없고 짧게 집어넣었다가 빼는 것으로 판사가 대신 양형을 내렸습니다.

나중에 이 판사가 이 법 시스템 안에서 자기가 적용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다가, 판사직을 사퇴하고 나와서 지금 유럽에서 회복적 정의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은퇴한 후에는 조금 짧게였지만 앨크하르트에서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 책임자로도 일했었습니다. 그런 사례들이 많이 있습니다.

4. 질문 : “화해와 용서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세요.”

* 답변 : 우선 나는 조정(mediation)이라고 하는 용어를 결코 사용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필요를 채우는 방식이고 그 다음에 실질적 책임에 대한 것을 이야기했는데 우선 범죄가 발생하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는 서로 원수가 되기 쉬운데 이 사법시스템 안에서는 이 원수된 관계가 더 강화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분명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 하려고 하는 것은 원수가 된 사람들에게 화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연구에 의해서 분명하게 차이가 나는 것은, 서로 갈라지는 구조로 가는 것과 서로 보고 만나는 구조로 갔을 때 가장 크게 나타나는 차이는, 서로에 대한 악화되는 감정이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좀 더 치유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관계설정이 새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이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높아진다는 연구는 분명히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처럼 화해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화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치유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치유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형태라고 해서 용서를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건 본인들의 선택 영역에 둬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오해는, 용서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유혹 같은 것이 있습니다.

사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분노를 드러내는 것이 당연한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이것을 사실 잘못 이해하다 보면 이 사람들이 당연하게 내놓는 현상을 오히려 억제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고통과 분노를 들어내는 단계에서 건너뛰어서 벗어나서 빨리 용서의 단계로 갔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유혹이 있습니다. 살인으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이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빨리 그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빨리 그 사람을 용서해주고 싶다는 라는 말을 듣고, 사람들을 만나서 준비할 때 사실은 이렇게 빨리 만나서 용서함으로써 당연히 겪어야 되는 분노의 과정, 고통의 과정을 이런 것들을 건너뛰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해줍니다. 용서의 욕구가 있는 것은 맞지만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 다른 것을 건너뛰는 위험성을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어야 합니다.

5. 질문 : “버지니아주, 해리슨버그에서 회복적 정의가 미친 영향은 어떤 것이 있나요?”

* 답변 : EMU가 이 지역에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이 많이 바뀌었으면 좋겠지만, 버지니아주는 매우 보수적이고 응보적인 주입니다. 미국에서도 버지니아주에서의 검사 재량은 상당합니다.

그런데 이 검사장의 위치는 선거로 뽑히기 때문에 매우 정치적인 자리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이 주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인종 문제등도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은 공화당이 강세인 지역입니다. 그래서 여기가 참 어려운 지역 중에 하나입니다.

필라델피아는 새 검사장이 진보적인 인사입니다. 당선되자마자 그는 30명의 검사를 해고했습니다. 나의 책 중에 감옥에 있는 사람들 사진책이 있습니다. 그 사진을 찍은 지역이 필라델피아 입니다. 이 진보적인 검사장이 되고 나니까 그 사진첩을 만들 때 있던 사람들이 아직 감옥에 있는데 그 감옥을 나올 가능성이 없는데, 이제는 나올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한 사람이 바뀌고 나니까 그런 가능성이 생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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